제품 안전성 확보 위해 판매 사전 승인...재구매율 54% 달해
[데일리원헬스=송신욱 기자] "그동안 소비단계에서 버려지는 화장품에 대한 문제는 많이 제기돼왔지만 생산이나 유통단계에서 버려지는 원료 등 자원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생산단계에서 폐기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화장품 원료, 부자재, 완제품 등의 규모는 연간 4,410억 원에 달하며, 이는 곧 온실가스 배출로 연결돼 환경오염의 원인이 됩니다. 심각한 자원 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장품 업계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화장품 제조업체에서 근무했던 김기현 슬록 대표는 매년 막대한 양의 화장품 원료가 폐기되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나서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2022년 5월 슬록 창업으로 어어졌다. 화장품 업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이들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슬록은 화장품 산업에서 외관상 흠집, 과다 주문 등의 이유로 하자 없이 버려지는 원료와 부자재, 반∙완제품을 거래하는 화장품 자원순환플랫폼 '노웨이스트(NO WASTE)'를 운영하고 있다. 구매회원과 판매회원이 화장품 원료∙원물, 부자재, 반∙완제품 등을 구매 또는 판매하는 방식이다. 구매회원은 최대 90% 할인된 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현재까지 노웨이스트에 등록된 제품은 200여 개, 월 평균 방문자 수는 9천여 명이다.
노웨이스트에서 판매되는 상품 대부분은 과다 생산 및 구매로 발생한 것이라 품질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제품상 하자가 없어 노웨이스트에서 제품을 구매한 고객의 재구매율은 54%로 만족도가 높다. 또, 노웨이스트에서 용기를 저렴하게 구매해 엄격한 용기 적합성 테스트를 거쳐 완제품을 출시하거나, 구매한 원료로 제품을 제작하는 경우도 많다. 노웨이스트에서 판매하는 물품이 더 다양해지면 제품 생산에 사용되는 모든 원∙부자재를 노웨이스트에서 조달해 100% 업사이클링 화장품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판매자가 플랫폼에 제품을 등록하면 즉시 판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운영자가 시험성적서 등을 확인하고 승인 후에 판매가 이뤄져 제품 안전성도 확보했다. 현재 노웨이스트에 원료를 등록한 대다수 판매사는 우수 화장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CGMP)에 부합하는 업체들로, 대기업부터 중견기업, 소기업까지 다양한 화장품 관련 기업으로 구성돼 있다.
노웨이스트의 특별함은 플랫폼이 운영되는 목적 자체에 있다. 기존에도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이나 재고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쇼핑몰이 있었지만 생산 단계에서부터 자원 낭비와 폐기를 줄이고 자원 수명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원료, 부자재부터 반∙완제품까지 다양한 자원을 거래하는 플랫폼을 만든 것은 노웨이스트가 국내 최초다.
지난 5월 슬록이 실시한 화장품 업계 종사자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화장품 업체의 약 77%가 불용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화장품 업계 종사자의 약 91%, 소비자의 87%가 멀쩡히 폐기되는 화장품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이용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김 대표는 "설문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것처럼 대다수 화장품 업계 종사자와 소비자가 폐기되는 화장품 자원 순환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라며 "노웨이스트 플랫폼이 활성화되면 연간 4,410억 원 규모의 버려지는 자원 중 약 36%에 해당하는 1,576억 규모의 자원을 순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원순환을 활성화하기 위해 무엇보다 국내 기업의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업계 종사자 대다수가 자원 폐기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에 반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아직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그는 "폐기 비용을 제품 판매가에 반영해 손익을 맞추는 등 기존 관행대로 처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 경제적이라는 인식이 개선돼야 비로소 '지속가능한 뷰티'가 완성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많은 기업이 노웨이스트 플랫폼에 참여해 판매 상품군을 다양화하면 자원 순환 플랫폼에 관심 갖는 소비자도 늘어날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기대다.
슬록은 최근 탄소중립연구원과 협업으로 화장품이 배출하는 탄소발자국을 산출하는 계산기도 개발해 실증하고 있다. 제품의 성분배합표, 포장재질, 제형, 포장사양 등 기본 정보를 활용해 화장품의 탄소배출량을 10분 내로 계산할 수 있는 도구다. 슬록은 화장품 탄소배출량 정량화 도구를 바탕으로 물질 성분을 검증하는 부분도 보완해 지속가능 화장품을 검증하는 서비스도 연내 출시할 계획이다.
폐화장품 업사이클링을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최근에는 사용기한이 지난 색조화장품을 업사이클링해 물감으로 개발한 강원대학교 창업팀 발라(BALA)와 협업하고 있다. 슬록이 폐색소원료, 폐색조 화장품을 수거해 발라에 제공하면 발라는 이를 활용해 수채화, 유화 등 물감으로 업사이클링한다.
김 대표는 "한국형 지속가능 화장품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슬록의 목표"라며 "이를 통해 제품과 브랜드에 지속가능성을 녹여낸 많은 K뷰티 기업이 환경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