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에도 등급이 있다고?...소비자는 여전히 ‘등급’보다 ‘가격’
돼지고기에도 등급이 있다고?...소비자는 여전히 ‘등급’보다 ‘가격’
  • 김도연 기자
  • 승인 2023.12.13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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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등급, 도매 단계에서만 표시 의무...정작 소비자는 몰라
등급제 기준 재편 등 보완 필요성 제기...가축 면역력 관리로 실질적 품질 높이는 방법도

[데일리원헬스=김도연 기자] 외식 물가 상승에 저렴한 돼지고기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지만 소비자의 돼지고기 선택 기준이 등급보다는 가격에 머물러 있어 등급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물가지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4.8% 상승하며 30개월 연속 전체 평균을 상회했다. 특히, 외식 돼지갈비와 삼겹살 가격은 각각 4.1%, 2.4% 올라 소비자의 외식비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외식 물가 상승에 돼지고기를 집에서 즐기는 소비자가 늘었다. 이마트가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주요품목 매출을 분석한 결과 비교적 저렴한 국내산 냉동돈육 매출이 4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 심화 속에 향후 소비자가 돼지고기를 선택하는데 가격의 영향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가격은 소비자가 돼지고기를 선택할 때 등급보다 우선하는 요소다. 지난해 농촌진흥청이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돼지고기 구매 시 등급보다 가격, 육색, 원산지, 이력정보 등이 우선 선택 기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품질 판단 기준으로 '등급 표시'를 꼽은 소비자는 42.7%로 5위에 그쳤다. 소고기 구매 시 품질 판단 기준으로 등급 표시가 78%로 1위로 나타난 것과 대조적이다.

소비자가 돼지고기를 구매할 때 등급보다 가격, 육색, 원산지, 이력정보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고기를 구매할 때는 등급을 가장 우선하는 소비자가 대다수지만, 돼지고기는 등급이 중요시되지 않을뿐더러 돼지고기에도 등급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소비자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7년부터 육질에 따라 돼지고기를 4단계로 등급을 매기는 돼지고기 등급제가 도입돼 의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도매 단계에서만 등급 표시 의무가 있고, 소매 단계에서는 자율적으로 표시가 가능해 소비자가 돼지고기를 구매할 때는 실질적으로 등급제가 활용되지 않고 있다. 

돼지고기는 도체중과 등지방 두께를 기준으로 1+, 1, 2 등외 4개 등급으로 나뉜다. 소고기와 마찬가지로 돼지고기도 축산법에 따라 등급 판정을 받아야 하지만, 등급과 마블링 지수를 판매점에 표시해야 하는 소고기와 달리 돼지고기는 판매 단계에서는 등급 표시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돼지고기는 도축할 때 등급이 정해지면 이후 가공하거나 소포장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과지방을 제거하는 등 품질관리가 이뤄진다. 도축 단계에서 판정한 등급을 판매 단계까지 연계하기 어려워 소매 단계 등급 표시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돼지고기 등급제가 소비시장에서 크게 유효한 역할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등급 판정 수수료는 지난해 74억 2,000만 원에 달해 돼지고기 등급제를 보완할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돼지고기 등급제 보완의 일환으로 '삼겹살 지방함량 표시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3월 3일 삼겹살데이를 맞아 유통업계에서 진행한 삼겹살 할인 행사에서 논란이 된 과지방 삼겹살 유통 문제 재발을 방지하고, 제품 신뢰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돼지고기 가공∙유통∙브랜드 업체 등에 대한 품질 관리 실태 점검을 강화하고 정형 기준 준수, 과지방 부위 제거 및 검수 등의 내용을 담은 품질 관리 매뉴얼을 제작해 보급할 계획이다.

지난 3월 삼겹살데이에 논란이 된 비계 삼겹살(이미지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또, 삼겹살 제품에 고지방, 중지방, 저지방별 지방 함량을 표시할 수 있도록 삼겹살 지방 함량 표시 권고 기준을 마련해 제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가공 후 부위별로 품질을 판정하면 인력, 비용, 시간이 과도하게 소요되고 동일한 부위에서도 품질 차이가 발생하는 등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마련됐다. 자율적으로 표시되는 등급 외에 추가로 제품의 지방 함량 정보를 표시하면 소비자가 제품에 대한 더 직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등급제를 재편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요가 많은 삼겹살을 중심으로 등급제를 재편하거나 등급 판정 기준으로 마블링, 육색, 보수력 등 다른 지표를 활용하자는 의견이다. 

지난해 한돈협회가 소비자와 유통관계자, 영양사 등을 대상으로 돼지고기 선택 기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잡냄새, 위생상태, 유통기한, 마블링, 육색, 보수력 등이 중요 기준으로 나타났다. 한돈미래연구소는 이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소비자가 선호하는 품질 지표인 보수력을 측정할 대안으로 육색(명도) 측정을 제시했다. 고기가 수분을 보존하는 정도인 보수력이 우수할수록 육질이 부드럽다. 육색이 짙을수록 보수력이 뛰어난 상관관계를 이용해 육색을 측정한 후 등급제 판정 기준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농장에서 돼지를 건강하게 길러 실질적으로 고기 품질을 높이는 방안도 주목받고 있다. 축산테크 스타트업 한국축산데이터는 가축 디지털 헬스케어 '팜스플랜' 솔루션으로 가축 건강을 관리해 면역력을 높이고 항생제 투여를 최소화하는 등 소비자에게 건강한 축산물을 공급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CCTV를 활용한 24시간 가축 비대면 모니터링과 인공지능(AI) 분석 데이터, 수의사의 정기검진 소견 등을 종합해 가축 면역력을 분석하고 건강 상태를 진단한다. 질병 발생 사후 대응이 아닌 예방을 목표로 평소 면역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항생제 등 약품 사용을 최대 65% 줄인다.

한국축산데이터의 팜스플랜을 적용해 생산한 돼지고기 '팜스플랜미트'(이미지 출처 : 한국축산데이터)

돼지는 돼지스트레스증후군 질환이 있을 정도로 스트레스에 민감한데 특히 항생제 투여 시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이 많이 분비된다. 코르티솔이 분비되면 고기 육질 저하에 영향을 미친다. 돼지 면역력 관리를 통해 항생제 투여를 줄이고 질병 발생을 예방하면 코르티솔로 인한 육질 저하를 방지하고 고기 보수력을 높여 육질을 향상할 수 있다.

경노겸 한국축산데이터 대표는 "돼지고기 등급제가 소비시장까지 연계되지 않는 상황에서 품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에게 실질적으로 품질 높은 축산물을 공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라며 "개체마다 다르게 생산되는 축산물 품질을 상향평준화하기 위해서는 사육 단계에서부터 가축 면역력을 관리해 원육 품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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