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전통주 '팔린카', 생산량 감소·전통의 맛 잃어
영국 맥주 사라질수도...기네스 생산도 물 부족으로 난항
[데일리원헬스=송신욱 기자]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폭우, 폭풍이 주류 생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폭우, 가뭄, 폭풍 등으로 인해 와인이나 증류주 같은 술은 맛이 달라지거나 아예 사라질 수 있는 위험에 처했다. 이탈리아의 프로세코부터 영국의 기네스까지, 기후변화로 위기에 처한 주류들을 소개한다.
◆기후변화로 생산량 5분의 1로 감소 위기에 놓인 프로세코
프로세코는 이탈리아 북동부 산악 지역 포도밭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이다. 부드러운 거품과 상쾌한 맛, 과일 향이 특징으로, 특히 사과, 배, 복숭아, 감귤류의 풍미가 두드러진다. 프랑스의 샴페인과 자주 비교되지만, 더 싸고 가벼운 맛으로 인기가 높다. 이탈리아는 매년 약 6억 병 이상의 프로세코를 생산하며, 그중 상당량이 전 세계로 수출된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인기가 높다.
이렇게 프로세코에 대한 수요가 크지만 향후 공급이 크게 감소할 전망이다. 이탈리아 북동부 지역의 기상 악화로 포도 생산량이 급감하고 있다. 여기에 토양 침식이 더해져 위기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갑작스러운 폭우가 급격한 토양 침식과 사면붕괴를 촉발해 최고 품질의 프로세코가 생산되는 발도비아데네와 코넬리아노의 포도밭을 파괴하고 있다. 가뭄도 또 다른 문제다. 산악 지대에서 포도 농사가 이뤄지는 탓에 인위적으로 작물에 물을 대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현지 생산자들은 드립 관개 시스템을 사용해 필요한 만큼만 물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물 낭비를 줄이고, 프로세코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는 글레라(Glera) 품종 외에도 기후변화에 더 강한 내성을 가진 포도 품종을 연구하고 있다. 또, 토양 침식을 막기 위해 자연적으로 포도 나무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커버 크롭(Cover Crop) 방식 등을 도입하면서 대응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당장 큰 성과를 얻기는 요원한 상황이다. 현지 생산자들은 프로세코 생산량이 최대 5분의 1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전통의 맛 잃어가는 헝가리 전통주 '팔린카'
팔린카는 중세 시대부터 헝가리에서 생산된 전통 과일 브랜디로 팔린카는 주로 헝가리와 인접 국가에서 널리 소비된다. 헝가리 법에 따르면, '팔린카'라는 이름을 사용하려면 헝가리에서 생산된 과일로만 만들어져야 하며, 증류부터 병입까지 모두 헝가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팔린카는 최근 기후변화로 생산량이 줄고, 그마저도 맛이 변화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팔린카 제조에 가장 흔히 사용되는 과일은 자두, 살구, 사과, 배, 라즈베리, 블랙커런트, 체리지만, 이 중 상당수의 재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라즈베리와 블랙커런트 같은 과일 작물이 기후변화로 위협받고 있다.
북쪽에서 차가운 공기가 더 자주 내려오면서, 봄철 한파와 늦서리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봄철 과일나무가 꽃을 피울 시기에 늦서리가 발생하면, 꽃과 어린 과일이 얼어붙어 수확량이 감소한다. 이는 특히 살구, 자두, 체리 같은 팔린카에 주로 사용되는 과일이 제대로 익지 못하는 등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여름철에는 남쪽에서 따뜻한 공기와 함께 습한 공기가 더 자주 올라와 가뭄과 고온 현상이 늘고 있다. 봄에는 어린 과일이 얼어붙고, 여름에는 극심한 가뭄과 싸워야 하는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팔린카의 맛과 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기온 상승과 가뭄으로 과일이 덜 달거나 쓴맛을 내고, 이로 인해 팔린카의 전통적인 맛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생산업체가 5월 서리를 피하기 위해 늦게 개화하는 나무를 심는 실험을 했지만, 전통적인 팔린카의 맛을 재현하는데 실패했다. 현지 제조업체들은 기후변화로 새롭게 재배할 수 있게 된 키위로 팔린카를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
◆사라질 위기 놓인 영국 맥주...'기네스'도 물 부족으로 생산 차질
에일(Ale)의 본고장인 영국 맥주는 기후변화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영국 맥주는 켄트 골딩스(Golding)과 파글(Fuggle) 같은 전통 홉으로 만드는데, 이 홉들은 맥주에 적당한 쓴맛과 꽃향, 약간의 허브 향을 더한다. 미국이나 독일 맥주보다 홉의 쓴맛이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탄산이 낮은 것이 특징이다. 기네스(Guinness)나 풀러스(Fuller's) 같은 유명 맥주 브랜드 역시 영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따뜻하고 건조한 날씨가 맥주에 쓴맛을 더하는 홉의 성장을 해치면서 영국 맥주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체코 과학 아카데미(CAS)와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팀이 지난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홉 수확량이 오는 2050년까지 최대 18%까지 감소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홉의 알파산 함량도 감소해 맥주의 쓴맛과 품질에도 악영향를 미칠 전망이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인 셰퍼드 니임 브루어리의 다니엘 웰런 기술 양조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에 강한 홉 품종을 개발해야 한다"라며 "그렇지 않으면 영국 맥주는 사라질 것이며, 그와 관련된 문화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홉의 생산과 품질 문제 외에 물 부족 문제도 심화되고 있다. 영국 기업으로 기네스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주류 회사인 디아지오는 주류 생산에 쓰이는 물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디아지오가 생산하는 증류주의 60% 이상, 맥주의 90% 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 디아지오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심각한 물 부족을 겪은 지역에서 43개의 생산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마이클 알렉산더 디아지오 글로벌 수자원, 환경 및 농업 지속 가능성 책임자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기네스와 탄커레이 진, 베일리스 아이리시 크림을 포함한 회사의 주요 브랜드가 물 부족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라며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양조장이나 증류소를 운영한다 해도, 가뭄이 발생하면 그 위험을 완화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