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원헬스=송신욱 기자] 탄소 배출을 유발하는 제품이나 행위에 직접적인 세금을 매겨야만 기후 정책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적인 비용 부과가 없는 기후 정책들은 사실상 큰 효과가 없었다.
독일 포츠담 기후 영향 연구소 연구팀이 24일(현지시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보고서 '기후 정책의 효과: 정책 평가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The effectiveness of climate policies: A systematic review of policy evaluations)'에 따르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 유발원에 직접적인 비용을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연구팀은 지난 1998년부터 2022년까지 전 세계 41개국에서 시행된 1,500개 기후 정책을 분석해, 각 정책이 탄소 배출 감소에 미친 영향을 평가했다. 그 결과, 전 세계에서 다양한 기후 정책이 기후변화 완화를 목표로 시행됐지만, 실제로 효과를 본 정책은 많지 않았으며, 성공적인 사례 역시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정책은 비용 부과, 규제, 보조금, 정보라는 네 가지로 분류하고, 전력, 교통, 건물, 산업의 네 가지 경제 부문을 역 인과 접근(Reverse causal approach)을 바탕으로 분석했다. 역 인과 접근법은 결과를 먼저 관찰한 다음, 그 결과를 초래한 원인이나 요인을 거꾸로 추적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탄소 배출량 감소가 관찰되었을 때, 그 결과를 초래한 정책이나 요인이 무엇인지 거꾸로 추적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특정 국가의 다양한 부문에서 배출량이 5% 이상 감소한 사례를 찾아, 관측과 모델링을 통해 감소 원인을 파악했다. 특정 국가의 특정 정책으로 5% 이상의 탄소 배출 감소가 나타나면, 기후가 비슷한 인접 국가를 대조군으로 설정하고 기타 요소를 고려해 평가했다. 연구에 따르면, 1998년 이후 전 세계에서 시행된 1,500개의 기후 정책 중 단 63개 사례만이 탄소 오염을 상당히 줄이는 데 성공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영국이 전력 부문에서 시행한 정책이다. 영국은 지난 2012년부터 석탄 퇴출과 배출 거래 제도를 포함한 11개 정책을 도입했고, 이로 인해 탄소 배출량을 거의 절반으로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 핵심은 탄소 가격 지원제(Carbon Price Support)와 유럽연합 배출권 거래제도(EU ETS)로 전력 부문의 탄소 배출에 대해 추가적인 비용을 부과하는 정책이다.
탄소 가격 지원제는 기존 EU ETS와 연계해 영국 내 발전소들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가격을 지불하게 했다. 이 제도는 석탄 사용을 줄이고, 저탄소 에너지로 전환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 2005년부터 시행된 EU ETS는 발전소와 대형 산업체에 탄소 배출권을 구매를 의무화해, 탄소 배출에 대해 경제적 비용을 부과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 두 가지 가격 정책이 결합돼, 영국 내 발전소들이 석탄 같은 고탄소 연료에서 벗어나 천연가스, 재생 가능 에너지 등 더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으며, 전력 부문의 탄소 배출 감축이 영국의 전체 탄소 배출량 감소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지난 2005년부터 2011년까지 교통 부분에서 시행한 연료 기준 상향과 보조금을 포함한 정책은 탄소 배출량을 8% 감소시켰다. 해당 정책은 탄소 배출에 대한 비용 부과 없이 제조사에게 차량 연비 향상을 강제하고, 사용자에게 전기차와 재생 가능 연료 사용 촉진을 위한 인센티브 지급에 초점을 맞춰 성과를 거뒀지만, 영국 사례와 비교해 감축폭이 적었다.
연구의 공동 저자인 니콜라스 코흐 독일 포츠담 기후 영향 연구소 기후 경제학자는 "탄소 배출량을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보조금과 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라며 "탄소세 같은 가격 책정 수단이 정책에 포함될 때만이 상당한 배출량 감소를 이룰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많은 기후 전문가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석 연료 같이 기후에 악영향을 미치는 자원에 비용 부과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잭 롭슨 스탠퍼드 대학교 기후 과학자는 "탄소 배출자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당면한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라며 "다른 정책들은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기에는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