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헬스 단상] 아프리카돼지열병 백신 개발 어디까지 왔나?
[원헬스 단상] 아프리카돼지열병 백신 개발 어디까지 왔나?
  • 오피니언
  • 승인 2023.05.1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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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후 전 세계적인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양돈산업에 지속적 피해
큰 유전체와 복잡한 바이러스 구조 등 다양한 이유로 백신 개발 어려움 겪어
현재 유전자 변형 약독화생백신 상업화에 가장 근접...안전성·생산성 등 개선해야
서태영 농림축산검역본부 해외전염병과 수의연구사
서태영 농림축산검역본부 해외전염병과 수의연구사

아프리카돼지열병(ASF : African Swine Fever)은 멧돼지과(Suidae) 동물에서 발생하는 출혈성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바이러스(ASFV : African Swine Fever Virus)에 의해 발생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ASF는 본래 아프리카 대륙의 풍토병으로 오랜 기간 동안 주로 사하라 이남 지역의 혹멧돼지, 숲멧돼지 등에서 무증상으로 감염이 이뤄졌다. 

불행하게도 ASF는 사육돼지에서 치명적인 증상과 높은 폐사율을 보인다. 유럽인의 아프리카 이주 과정에서 도입된 사육돼지에서 1909년 처음 발병이 확인됐다. 1957년 포르투갈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서 ASF가 발생했고, 이후 여러 국가에서 ASF가 발생했다. 그러나 많은 노력 끝에 1990년대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ASF가 근절돼 다시 아프리카 풍토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2007년 조지아공화국으로 유입된 유전형 2형의 ASF가 서쪽으로는 벨기에, 동쪽으로는 러시아, 중국을 거쳐 한국과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전파돼 전 세계 양돈 산업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9년 파주 돼지농장에서 발생이 처음 보고된 이후 2023년 4월까지 36개 돼지농장에서 발병이 보고됐다. 야생 멧돼지에서는 3,000건 이상 ASF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

ASFV는 전염력이 높은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가열되지 않은 잔반에서 6개월까지 감염력을 유지할 정도로 높은 환경 저항성을 가졌으며, 유라시아 대륙에 널리 분포하는 야생 멧돼지로 인해 질병 통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ASF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1960년대부터 백신 개발이 시작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ASF를 성공적으로 방어하는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으며, 백신 개발이 어려운 원인들은 다음과 같다.

 

1. 복잡한 구조와 큰 유전체(약 190kbp, RNA 바이러스 중 가장 큰 코로나바이러스가 약 30kbp) 
2. 병원성과 관련된 바이러스 유전자와 질병 방어 기전이 밝혀지지 않음
3. 중화항체가 확인되지 않음
4. 바이러스 증식을 위한 세포주 확립이 어려움
5. 바이러스가 돼지류에만 감염돼 백신 효능 평가를 위한 실험동물 모델 부재

 

ASF 백신 개발은 크게 불활화백신(Inactivated vaccine), 서브유닛백신(Subunit vaccine), 약독화생백신(Live attenuated vaccine) 형태로 시도되고 있다. 바이러스를 불활화해 감염력을 제거한 불활화백신은 다양한 감염병 예방에 성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생백신에 비해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어 많은 연구자들이 불활화 된 ASFV를 다양한 방법으로 돼지에 면역시켰으나, 현재까지 효과적으로 질병을 방어할 수 있는 불활화백신을 개발하지 못했다.

유전공학적 기술 발달로 시도되고 있는 방법인 서브유닛백신은 바이러스 구성 성분 중 면역을 유도할 수 있는 바이러스 단백질을 방어항원으로 이용하는 형태다. 최근 코로나19(COVID-19) 백신으로 사용된 mRNA백신 또한 서브유닛백신의 일종이며, 재조합단백질, DNA백신, 바이러스벡터백신 등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있다.

그동안 ASFV의 구조단백질 중 방어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는 단백질들을 대상으로 면역을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효과적인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하나의 항원으로는 방어가 어렵고 여러 항원을 조합해 방어능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ASF 백신으로 개발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되는 백신 형태는 약독화생백신으로 위 두 백신 형태와는 달리 세포성 면역을 강하게 유도하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특정 세포에 ASFV를 계대배양해 병원성이 약해진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1960년대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사용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안전성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생백신의 사용으로 관절 부종, 폐사 등 부작용이 나타나 곧 백신 사용이 중단됐다.

최근에는 CRISPR/Cas 유전자 편집 기술 등을 이용해 ASFV의 병원성 관련 유전자를 제거한 유전자 변형 약독화생백신(Genetically modified live attenuated vaccine)이 개발되고 있다. 여러 국가 연구진이 해당 방법으로 백신후보주를 개발하고 있으며, 이중 미국 농무부(USDA)에서 개발한 백신후보주 3종이 베트남에 도입돼 상업화를 위한 임상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유전자 변형 약독화생백신이 상업화에 근접해 있지만 아직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

첫 번째는 안전성(Safety) 문제다. 실제로 베트남에 도입된 3종의 백신후보주 중 가장 먼저 임상평가를 진행한 백신후보주의 경우 대규모 농장 적용 시 백신 접종 돼지의 5%가량이 폐사하는 등 피해가 나타나 임상평가가 중단되기도 했다. 아직까지 ASFV의 병원성과 관련된 기전이 완전히 밝혀져 있지 않고, 유전자재조합 기술로 결손시킨 유전자의 기능 또한 완전히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전자 변형 약독화생백신의 안전성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두 번째는 생산성(Productivity)이다. 백신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백신후보주를 안정적으로 배양할 수 있는 세포주가 필요하지만, 이를 위한 마땅한 세포주가 없어 ASF 바이러스 배양에는 주로 살아있는 돼지의 폐, 혈액 또는 골수에서 채취한 대식세포를 이용한다. 이 경우 다른 병원체 오염의 위험성이 있기도 하지만, 세포 및 이로부터 생산한 백신의 품질 유지도 쉽지 않다. 또, 세포 채취 비용 및 동물복지 차원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어 바람직한 방법으로 보기 어렵다.

세 번째는 유전적 안정성(Stability) 확보다. 약독화생백신은 감염력이 있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생산과정(세포배양)이나 백신을 접종한 개체에서 바이러스의 유전자 변이로 인한 병원성 회복이나 면역원성 저하 등 형질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ASF에 의한 피해가 증가하면서 관련 연구에 대한 투자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ASFV의 병원성과 관련된 유전자 확인, 바이러스 배양을 위한 세포주 개발 등 백신 개발과 관련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약독화생백신의 한계점도 가까운 시일 내에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다른 백신 형태보다는 ASF 약독화 생백신 개발에 걸고 있는 기대가 큰 것은 사실이나, 생백신이 갖는 위험성이나 한계점을 고려한다면 불활화백신이나 다양한 형태의 서브유닛백신 개발을 위한 연구 또한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ASF 백신 개발에 대한 사회적 요구 증가에 따른 관련 연구의 양적, 질적 성과를 고려한다면 ASF로 인한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기가 멀지 않을 것이라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서태영 농림축산검역본부 해외전염병과 수의연구사 sty8911@korea.kr

[필자 소개] 서태영 수의연구사는 서울대 수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석사)하였으며, 2017년부터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2021년부터 해외전염병과 아프리카돼지열병백신연구실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백신 개발 연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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