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동물을 위한 동물복지] ⑤고기 아닌 동물로 사는 곳...가축을 위한 난민캠프 '생추어리'
[먹는 동물을 위한 동물복지] ⑤고기 아닌 동물로 사는 곳...가축을 위한 난민캠프 '생추어리'
  • 박진영 기자
  • 승인 2021.07.29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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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가축 생추어리 약 150여 곳 존재...국내도 1호 생추어리 탄생
자본·부정적 인식 등으로 국내 가축 생추어리 빠른 확대 난항

[편집자 주]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여기는 ‘펫팸족’이 늘어나면서 반려동물의 ‘동물복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인 가축은 어떨까. 가축에 대한 동물복지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머물러 있다. 유럽연합(EU)과 영국 등이 최근 가축의 우리 사육을 금지하고 운송 거리를 제한하는 등 동물복지 향상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는 반면 국내는 아직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 램인터내셔널은 '먹는 동물을 위한 동물복지' 기획을 통해 가축의 동물복지 국내 실태와 글로벌 동향, 개선 방향성을 짚어 본다.

[데일리원헬스=박진영 기자] 보호구역, 피난처라는 뜻을 가진 '생추어리(sanctuary)'는 위급하거나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인 동물이나 야생으로 돌아가기 힘든 상황의 동물을 수명이 다할 때까지 보호하는 구역을 말한다. 관광산업에 희생된 코끼리들을 구조해 보호하는 태국의 ‘코끼리 자연공원’이나, 서커스에 이용된 동물들에게 789에이커(219만m²) 규모의 피난처를 제공하는 미국의 ‘야생동물 생추어리’가 대표적이다.

야생 동물이 아닌 돼지나 닭, 소 등 가축을 위한 생추어리도 존재한다. 미국의 동물권 활동가 진 바우어가 도축장, 공장식 농장에서 구조한 동물을 위한 공간을 ‘생추어리’라고 부르면서 시작됐다. 실제 수명보다 훨씬 짧은 생을 사는 가축을 본래 습성대로 평생 살게해 가축에 가졌던 편견을 깨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목적으로 운영되는 가축 생추어리는 해외에 약 150곳 정도다.

DxE(Direct Action Everywhere) 활동가들에 의해 구조되는 돼지의 모습  자료directactioneverywhere
DxE(Direct Action Everywhere) 활동가들에 의해 구조된 돼지의 모습 자료(이미지 출처 : Direct Action Everywhere)

 

◆양돈장과 실험실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이’와 ‘잔디’

우리나라에도 생추어리가 있다. 지난 2019년 7월 초 양돈장에서 구조된 ‘새벽이’가 거주하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생추어리인 ‘새벽이생추어리’다. 보통 6개월이면 출하체중 115kg에 도달해 도축되는 돼지의 운명과 달리, 새벽이는 200kg이 훌쩍 넘는 몸무게로 지난 5월 생추어리 입주 1년을 맞이했다. 한 제약회사 연구소의 실험용 돼지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잔디'는 올해 2월 생추어리에 신규 입주했다.

경기도 화성시의 한 돼지농가 분만사에서 태어난 새벽이는 ‘DxE(Direct Action Everywhere) 코리아’에 의해 공개구조됐다. DxE는 열악한 농장 환경과 새벽이를 구조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해 SNS와 유튜브 등에 공개했다. 폭 70cm, 길이 1m90cm에 갇혀있는 어미돼지와 죽은 새끼돼지들이 섞여있는 열악한 환경을 공개했다. 이런 곳에서 사육되는 동물을 구조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DxE 코리아의 입장이다. 공개구조는 현행법상 불법이지만, DxE는 구조 활동이 정당한 일이라는 뜻에서 활동가의 얼굴과 신상도 가리지 않는다. 해당 양돈장 주인은 공개구조에 법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해외 동물권 단체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가축을 공개구조한다.

돼지는 인간과 형질이 가장 유사한 동물로 꼽혀 실험에 자주 이용된다. 제약회사 연구소 실험용 동물인 것으로 추정되는 잔디는 외부의 충격으로 머리를 다쳐 안락사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동물병원은 안락사 대신 새벽이를 임시보호했던 활동가에게 연락했고, 덕분에 목숨을 건져 생추어리에서 새벽이와 함께 지내게 됐다.

새벽이생추어리는 앞뜰과 새벽이와 잔디의 집 등으로 구분되어 있고, 진흙목욕탕과 장난감이 매달린 나무기둥 등이 있다.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새벽이와 잔디가 자주 하는 행동은 바로 진흙목욕이다. 진흙목욕은 자외선과 진드기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그 자체로 놀이다. 생추어리 입구에는 "여러분은 지금 동물들의 안식처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들이 주인이고 여러분이 방문객임을 잊지 말아주세요"라는 문구가 쓰인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생추어리에서만큼은 가축이 동물이자 생명체로서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이다.

진흙목욕을 하며 편안히 쉬고있는 새벽이의 모습
진흙목욕을 하며 편안히 쉬고있는 새벽이의 모습(이미지 출처 : 새벽이생추어리 페이스북)

 

◆도살장서 살아남아 구조된 아기 닭 ‘잎싹이’

최근에는 산란계 농장 트럭 안에 섞여 있던 어린 닭이 구조돼 국내 최초로 닭을 위한 생추어리가 탄생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애니멀세이브는 경기 포천시 한 도살장에서 산란계 한 마리를 구조했다고 밝혔다. 초복을 앞두고 비질 기획을 위해 현장답사에 나선 활동가 눈에 띄면서 구조됐다.

달걀을 목적으로 농장에서 사육되는 산란계는 약 3년 남짓한 생을 살지만, 자연 상태에서 닭의 평균 수명은 12년에 달한다. 생후 5~6개월부터 산란을 시작해 1년 반가량 매일 알을 낳고, 노화로 더이상 달걀을 생산하지 못하면 도살장으로 옮겨진다.

포천의 도계장의 수천 마리의 닭들 사이에서 유유히 걸어다니는 '잎싹이'의 발견당시 모습
포천의 도계장의 수천 마리의 닭들 사이에서 유유히 걸어다니는 '잎싹이'(이미지 출처 : 서울애니멀세이브)

구조된 '잎싹이'는 도살장으로 이동되는 차 안에서 발견됐다. 도축을 하기엔 아직 어린 닭을 발견한 운전자가 잎싹이를 놓아주면서 도살장에서 트럭에 실린 수천 마리의 닭들 사이에서 유유히 걸어 다니고 있던 어린 닭은 결국 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에게 발견돼 구조될 수 있었다.

잎싹이는 현재 활동가의 자택에서 보호 중이며 향후 살아갈 거처를 물색하는 중이다. 구조동물을 위한 작은 보호소를 의미하는 ‘마이크로 생추어리’ 형태로 잎싹이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활동가가 계속 보호하는 방식을 고려 중이다.

 

◆국내 생추어리, 늘어나기는 현실적 어려움 커

150개 남짓한 해외 생추어리 수와 비교해 국내에서는 새벽이생추어리가 생긴 이후 아직 소식이 없다. 동물 구조부터 평생 살아갈 수 있는 땅을 마련하는 비용까지 만만치 않은 탓이다. 기부나 펀딩 등에 의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특히 몸집이 큰 소를 위한 생추어리 땅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가축을 방목 사육하는 ‘산지생태축산’ 기준에 따르려면 최소한 수천 평의 땅이 필요하다. 활동가가 거주하고, 외부인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대중교통과 전기·수도 시설을 갖춰야 한다. 게다가 가축 전염병 가능성 때문에 근처에 농장이나 도살장도 없어야 하는 등 제약이 상당하다.

가축 생추어리에 대한 적대적인 시선과 거부감도 문제다. 새벽이생추어리는 구체적인 위치를 외부에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으며, 봉사자에게도 공간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SNS상에서 댓글과 메시지로 생추어리에 위해를 가하겠다며 협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조되는 동물이 많아지고 생추어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수록 반발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국내 동물보호단체 한 관계자는 "생추어리가 가축을 위한 낙원처럼 여겨지지만 생추어리에 사는 가축 역시 인간이 정해 놓을 경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라며 "이마저도 자본 부족과 생추어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해 현실적으로 빠르게 생추어리를 늘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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