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동물을 위한 동물복지] ①“어차피 잡아먹는데”...가축에겐 너무나 먼 동물복지
[먹는 동물을 위한 동물복지] ①“어차피 잡아먹는데”...가축에겐 너무나 먼 동물복지
  • 박진영 기자
  • 승인 2021.06.24 1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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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뜬 채로 분쇄·도살...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가축의 삶
매번 반복되는 살처분 논란...도축장에서도 동물복지 '실종'
국내 동물복지 인증 농장, 닭 농장 227곳...소 농장 단 1곳

[데일리원헬스=박진영 기자] [편집자 주]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여기는 ‘펫팸족’이 늘어나면서 반려동물의 ‘동물복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인 가축은 어떨까. 가축에 대한 동물복지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머물러 있다. 유럽연합(EU)과 영국 등이 최근 가축의 우리 사육을 금지하고 운송 거리를 제한하는 등 동물복지 향상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는 반면 국내는 아직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 램인터내셔널은 '먹는 동물을 위한 동물복지' 기획을 통해 국내 가축의 동물복지 실태와 글로벌 동향, 개선 방향성을 짚어 본다.

 

◆필요에 의해 태어나고 죽임을 당하는 가축의 삶

닭은 계란을 얻기 위해 키우는 산란계와 고기를 얻기 위한 육계, 두 종류로 구분된다. 산란계는 일생 동안 달걀을 많이 낳도록 개량됐고, 육계는 맛이 우수하도록 계량됐기 때문에 각자의 쓸모에 따라 삶이 정해진다. 그런데 만약 산란계에서 수평아리가 태어나면 어떻게 될까. 산란계 수평아리는 알도 낳지 못하고, 맛도 없기 때문에 농장주 입장에서는 폐기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자료=Animal Equality
분쇄기에 갈려 생을 마감하는 수평아리(이미지 출처: Animal Equality)

상품으로 출하하는 가축의 경우, 가스나 전기를 이용해 기절시킨 후 도축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상품으로 취급되지 않는 수평아리는 관련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수평아리는 의식이 있는 상태로 분쇄기에 갈리거나, 마대자루에 넣어 깔려 죽는 등 끔찍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는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가축인 돼지도 사정은 비슷하다. 수퇘지는 특유의 ‘응취’가 난다는 이유로 어릴 때 거세를 한다. 마취를 하기 위해서는 수의사를 불러야 하지만, 비용과 시간 문제로 농장에서는 대부분 마취 없이 직접 거세하는 방식을 택한다. 당겨 떼어내는 방식으로 거세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 돼지들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죽기도 한다.

좋은 우리에서 사육되는 돼지들
좁은 우리에서 사육되는 돼지들

좁은 공간에서 자라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돼지들은 이빨로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거나 공격하는 행동을 보인다. 그 과정에서 상처 입은 돼지는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많은 농장에서는 관행적으로 돼지들의 꼬리와 이빨을 자르는데, 이때도 대부분 마취 없이 진행된다.

 

◆살처분도 도축도 '사라진 동물복지'

열악한 사양관리 환경과 밀집 사육으로 인해 가축은 질병의 위협에 쉽게 노출된다. 최근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조류인플루엔자(AI) 등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바이러스성 질병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해당 질병은 치료제도 없어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은 살처분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한 농장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해당 농장뿐만 아니라 인근 수 km 내 멀쩡한 가축들까지 질병 예방을 명목으로 살처분된다. 전 세계 돼지의 절반을 기르고 있는 중국은 지난 2018년 ASF가 퍼져 전체 개체의 31.5%인 돼지 1억 4천만 마리를 폐사시켰다. 국내에서도 2003년 이후 AI로 살처분 된 가금류가 누적 1억 마리를 넘어섰다.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건강한 가축을 죽이는 것도 문제지만 또 다른 문제는 살처분 되는 가축을 산 채로 땅에 묻는다는 것이다. 고통을 줄이기 위한 별도의 조치 없이 살아있는 가축을 땅에 묻어 죽이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살처분 된 가축으로 토양 및 수질오염 문제가 발생하고 살처분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통 받지만 예방적 살처분은 계속되고 있다. 

살처분뿐 아니라 도축 과정에서도 가축의 고통은 피할 수 없다. 도축될 때에도 눈을 편히 감기 힘들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을 도살할 때 불필요한 고통을 최소화하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도살하도록 규정돼 있다. 실제로 도축 과정에서 가축을 기절시키기 위해 가스와 전기를 사용하지만, 상당수 동물들은 다시 깨어나 의식이 있는 채로 죽음을 맞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록 사람의 필요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 가축이지만, 그 모든 과정이 고통스러워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이에 따라 가축이 적어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가축에게도 ‘동물복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증제에만 의지한 국내 가축 동물복지...참여 농가도 '미미'

동물복지란 인간이 동물에게 주는 고통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동물의 본래 습성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동물보호 기본 원칙이 된 ‘동물의 5대 자유’는 ▲배고픔과 갈증, 영양불량으로부터의 자유 ▲불안과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정상적 행동을 표현할 자유 ▲통증·상해·질병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이에 따르면 동물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충분한 공간에서 일상적인 행동을 할 수 있지만 국내 환경은 아직 거리가 있다. 가축을 좁은 우리에 가둬 키우는 공장식 축산이 만연한 탓이다. 정부는 더 좋은 환경에서 가축을 기르는 농장을 인증하는 동물복지 인증제로 동물복지를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지만 일부 축종만 수혜를 받고 있다.

동물복지 인증 기준을 맞추려면 가축 두수 대비 더 넓은 사육 공간에 양질의 사료를 제공해야 하며,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도축장에서만 가축을 출하해야 한다.

달걀의 경우 별도의 도축 과정이 필요하지 않고, 소형 동물이라 비교적 축사 확장에 대한 압박이 덜하다. 그러나 돼지나 소 같은 경우 덩치에 맞는 사육공간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또한, 전국의 도축장 중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곳을 찾기 어려운 것도 걸림돌이다.

GS리테일 '달리살다'에서 판매하는 동물복지 유정란
GS리테일 '달리살다'에서 판매하는 동물복지 유정란

최근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수요와 함께 가치소비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동물복지 상품 매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유기농 전문 온라인몰 ‘달리살다’는 올해 1월 1일부터 2월 14일까지 약 한 달의 기간 동안 달걀 매출이 460% 증가했다고 밝혔다.

달리살다는 동물복지 인증 농가에서 유기농 사료를 먹고 자란 닭이 낳은 달걀만을 판매한다. 유통업계 또한 트렌드에 발맞춰 관련 상품 확대에 나서고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 2017년 동물복지 닭고기 13종을 출시한 이후 현재까지 관련 상품을 28가지로 확대했다.

 

전국 1호 한우 동물복지 인증 '만희농장'. 전남도 제공
전국 1호 한우 동물복지 인증 '만희농장'(이미지 출처 : 전남도)

하지만 동물복지 상품이 일부 축종에만 집중돼 있다는 한계는 여전히 남아있다. 돼지나 소에 비해 닭과 같은 소형 동물은 동물복지 인증 기준을 맞추기 비교적 수월해 동물복지 인증을 얻은 농장수가 월등히 많다.

실제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장수를 따져보면 차이는 극명하다. 동물복지 인증 닭 농장수는 277개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뒤이어 젖소는 22개, 돼지는 17개 수준이다. 한우는 올해 4월 첫 동물복지 인증 농장이 탄생했으며, 염소와 오리는 아직 동물복지 인증 농장이 없다.

농식품부는 올해 반려동물 분야 예산으로 88억 원을 배정했지만, 가축과 관련해 배정한 예산은 4억 원 뿐이다. 이에 대해 일부 축산 농가는 높아진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에 발맞춰 농장 현실에 맞는 동물복지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소비자가 다양한 동물복지 상품을 접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김준영 한국축산데이터 수의사는 "한국 동물복지 정책의 초기 모델이 유럽에서 비롯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현재의 기준이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국내 축산 환경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라며 "축산 농가는 물론, 소비자도 동물복지의 가치에 공감해 협력할 수 있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로드맵 수립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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